2018년 9월 4일 화요일

제대로 아는 것


 무언가에 대해서 스스로 알고 있는 지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더하기의 예를 생각해보라. 무언가를 더하기 만큼 쉽게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안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어떤 일을 제대로 안다면 적어도 일에 관련해서는 다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망치는 일은 하지 않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나와 사람들을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

2018년 6월 19일 화요일

말의 정의


 언젠가 대학생 시절 철학과 교수와 철학의 정의에 대해서 나눈 논쟁에 대해서 글을 적이 있다. 철학의 정의를 모르고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 이는 교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 알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현재와 미래가 바뀔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함부로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욱이 누군가를 가르친다거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모르고 있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없다.
 오래 그리스 아테네의 소크라테스는 단지 자신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우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인류의 4 성인 중의 명으로 꼽히고 있다.

2018년 6월 10일 일요일

공수래공수거라는 말


  손으로 왔다가 손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재물에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 상태로 죽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이전의 삶에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특정한 수준의 진실도, 지혜, 양심, 용기 등을 지닌 채로 태어난다. 그리고 자신의 속에 존재하는 일들을 통하여 변화된 수준의 진실도, 지혜, 양심, 용기 등을 지닌 채로 죽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은 삶을 산다. 어떤 이는 삶을 축복이라고 하고 다른 어떤 이는 삶을 고통이라고 한다. 삶은 축복인가? 왜냐하면 삶이 인간이 자신을 나은 존재로 만들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삶은 고통인가? 왜냐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쫓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욕망은 끝이 없다. 충족되지 않은 욕망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2018년 5월 22일 화요일

의도와 실행


무언가를 행하고자 하는 의도와 실제로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실행하고자 하는 의도는 있으되 방법을 모른다면 실행은 불가능하다.
실행하는 방법을 알되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또한 실행은 불가능하다.

삶의 목적


인간이 사는 목적은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목적을 위하여 인간은 자신 속에 존재하는 것들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각자 다양한 일들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행한 일들의 결과에 따라 목적( 나은 인간이 되는) 이루기도 하고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죽어간다. 알든 모르든 삶을 통하여 인간은 나름대로의 결과를 만든다.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자신이 하는 일들을 통해서 어떻게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를 모르고 사는 삶은 당연하게도 삶의 목적을 이룰 없다.

2018년 2월 4일 일요일

친구가 되고자 하나 친구가 되기 어려운 존재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할 있는 사람을 진실한 사람이라고 한다. 진실한 사람은 세상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준비가 되어있고 그리고 친구가 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친구가 있는 진실한 사람은 불행하게도 친구가 되기는 가장 힘든 사람이다. 그것은 아마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인 진실이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2018년 1월 3일 수요일

진정한 가르침

   지혜로운 자가 '신선(神仙)' 되는 공부를 한다는 사람을 만났다.
  "신선이 되는 공부를 신선이 와서 직접 가르치는가?"
  "그렇지 않다."
  "그럼 공부를 통해서 신선이 사람이 있는가?"
  "아직 없다."
  "신선이 되는 공부를 신선이 와서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통해서 신선이 자도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신선이 되는 공부라고 있는가?"
  "..."

  황당한 이야기는 실화이다. 그리고 보다 황당한 많은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진정한 가르침이란 가르침 자체가 배운 사람 속에 나타나야 한다.

  다양한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는 많은 단체들이나 사람들을 만나게 , 위의 일화를 떠올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