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2일 금요일

가장 해로운 두가지: 한과 애착

 인간의 삶에서 자신에게 가장 큰 피해를 만드는 것은 한과 애착이다.
 한은 있는 일을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 혹은 남에게 속아서 만들어진다. 애착은 무지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부질없는 것에 자신의 마음을 옭매기 때문에 생긴다.
 한과 애착은 인간 세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속아서 한을 갖게 되지는 않는가 혹은 자신의 무지로 인하여 쓸데없는 일에 자신의 마음을 묶어두어서 삶과 죽음을 통해서 어둠 속을 헤매게 되지는 않는가 하는 일이다.

눈 뜬 장님

 인류의 큰 스승들은 일반 사람들을 눈을 뜬 장님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육체적으로 시력을 잃어서 사물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의 일들 속에 존재하는 이치를 보는 눈이 멀었다는 뜻이다. 즉, 세상 속에 일어나는 일들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가 어떠할지를 보지 못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가장 큰 도의 근본


예수나 석가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와서 전한 가장 도의 근본은 양심과 용기이며, 그들은 이를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양심과 용기가 있는 자는 모든 것을 얻을 있습니다. 1989. 4. 1

2014년 12월 8일 월요일

매트릭스 영화처럼

 삶은 오묘하지만 동시에 재미없다.
 스페인에서 한 신부를 만났을 때,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이야기를 했었다. 매트릭스 속에 사는 이들에게 그들의 진실을 말해주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고 말해 주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포함한 절대 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특히 잊고 있는 자신의 삶의 진실과 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적의(敵意)마저 나타낸다.
  매트릭스의 존재를 알고 살아가는 것과 매트릭스 속에서 그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의 차이는, 자신의 진실을 알고 살아가는 것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의 차이와 같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실을 모르고 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진실은 쓰고,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 3일 수요일

위선자

위선이란 그럴듯 하지만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거짓을 말한다.

어떤 철학자와의 대화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래의 교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나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3학년이었을 때, 철학과의 교수동 건물을 방문했다. 한 교수의 문에 안에 있다는 표시가 있어 노크를 했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자리에 앉았다. 기다릴 것 없이 곧장 물었다.
  "철학이 무엇입니까?"
  "질문이 너무 광범위해서 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그런 식의 대답은 답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대답 아닙니까?"
  그 때 누군가가 그를 방문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방을 나와야 했다.
  며칠 후, 그 교수를 찾아가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답을 했다.
  "어떤 종류의 철학을 묻고 싶은 것이냐?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냐? 아니면 칸트의 철학이냐?"
  "교수님, 어떤 수학 문제의 해답이 동양과 서양에서 다릅니까?"
  "같다."
  "철학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나 칸트의 생각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 그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철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내가 알고 있던 철학의 정의를 말해주었다. 그 교수는 나의 답이 옳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교수님, 그렇다면 교수님은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그 질문은 교수를 화나게 했고 나는 쫓겨났다.